제품의 본질에 집중한 제품 개발 방법론
AI Agent의 시대
최근 모든 화두는 단연 ‘AI 에이전트’다. AI 에이전트는 인간의 개입 없이 특정 작업을 수행하는 자율 지능형 시스템을 말한다. SKT, LG Uplus, KT등의 통신사들은 주요 사업인 스마트폰(모바일)을 기반으로 AI 에이전트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고, 더 나아가 향후에는 TV나 냉장고 화면, 스피커 등 집안 가전에도 적용되는 홈 AI 에이전트 서비스로 확대할 전망이다.
AI 에이전트가 시장을 어떻게 바꿀수 있을까? 스마트 TV의 앱처럼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앱이 될 것인가? 아니면 스마트폰처럼 시장을 바꾸는 혁신적인 서비스가 될것인가? 새로운 기술이 나올때마다 우리들은 해당 기술로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수 있을 지를 고민한다. 하지만 진정한 ‘Big Thing’은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까?라는 질문에서 접근해서는 안된다. 또한 고객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기반으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접근도 잘못되었다. 고객이 말하지 않는 본질적인 가치에 집중을 해야 한다.
AI가 일으킬 혁신에서는 더이상 패스트 팔로우를 위한 경쟁자를 따라가는 전략이 아니라 First Mover가 되어야 한다.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키는게 아니라 미래의 시장이 나아갈 방향을 미리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혁신을 시도해야 한다.
미래 시장이 나아갈 방향을 어떻게 예측할 수 있을까?
PayPall의 창업자이자 AI회사 팔란티어 테크놀러지를 설립한 피터릴은 저서 ‘Zero To One’에서 기존의 효과가 입증된 성공경험을 모방하는 수평적 진보를 1 To N이라고 부르고, 아무도 한적이 없는 일을 하는 행위를 통하여 0에서 1을 만들어내는 수직적 진보를 Zero To One이라고 부른다. 미래 시장이 나아갈 방향을 예측하고 이를 만들어내는 일은 Zero To One과 유사하다. 일반적으로 제품이 시장에 진입되는 과정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가장 첫 시작은 유용한 아이디어를 내는 단계이다. 그 다음은 이를 작동하는 제품으로 구현을 한다. 유용하지 않거나 작동하지 않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지 못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학생만 되어도 유용하고 작동하는 제품을 뚝딱 만들어 낸다. 하지만 고객에게 팔릴 제품을 만드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 단계에서 첫번째 Chasm이 발생한다. 대부분의 스타업이 작동되는 제품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게 아니라 팔릴 제품을 만들어 내지 못하여 실패한다. 고객에게 팔릴 제품을 만드는 일이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먼저 MVP(Minimal Viable Product)를 만들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여기서 V는 Valuable이 아니라 Viable이다. 즉 생존가능한, 고객에게 돈을 받아낼 수 있는 최소한 제품을 검증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MVP를 찾은 후 Growth Hacking이라는 Data 기반의 실험방법론을 통하여 빠르게 제품을 시장에 진입시킨다.
Lean Startup, Growth Hacking와 같은 Data기반의 분석적 사고방식과 귀납적인 방법론은 많은 성공사례를 만들어 냈다. Toss는 이러한 사고를 더욱 발전시켜 Carrying Capacity란 개념을 소개하기도 했다.
주) Carrying Capacity : Toss의 이승건 대표가 소개한 개념으로 활성화 사용자수(MAU)는 Infow와 Chrun(고객이탈율)만으로 결정된다는 이론
하지만 MVP를 찾아 Growth에 성공한 제품들이 모두 시장을 지배하고 Zero To One을 달성하는 제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첫번째 단계를 넘더라도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가치에 도달하지 못하거나 파괴적인 혁신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고객의 목소리를 잘 들으려면 할수록 시장에서 도퇴되는 딜레마가 생긴다. (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 HBR 2015.12월호)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고객의 피드백을 직접 반영하는 것을 혁신을 방해하는 요소라고 보았다. 잡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웨인 그레츠키는 '나는 퍽이 지나간 곳이 아니라 앞으로 갈 곳을 향해 스케이트를 탄다'고 말했습니다. 애플은 앞으로 갈 곳을 향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처음부터 그랬고, 앞으로도 항상 그럴 것입니다. (Wayne Gretzky said, 'I skate to where the puck is going to be, not where it has been.' And we've always tried to do that at Apple. Since the very very beginning. And we always will)”
이는 고객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제품을 기준으로 개선점을 요구할 뿐,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혁신적인 제품이란 고객의 기존 경험을 넘어선 전혀 새로운 가치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 잡스의 철학이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전통적인 ‘시장 지향적(market-driven) 개발’과도 대조되는 개념이다. 일반적인 기업들은 제품을 출시하기 전, 고객 설문 조사나 포커스 그룹 인터뷰를 통해 고객의 니즈를 분석하고 이를 제품 설계에 반영하는 방식을 따른다. 하지만 애플은 이러한 방식이 혁신을 저해하고, 오히려 제품을 평준화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다. Data기반의 제품개발 방식도 근본적인 혁신을 일으키기 보다는 국소 최적화에 빠지기 쉽다.
제품의 본질에 기반한 Brain Tailored Design
이러한 시장 지향적 개발과 반대되는 제품 개발방식은 방법론이라기 보다는 소수의 직관이나 인싸이트에 기인한 것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iPhone이 출시된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Apple의 혁신이 소수의 천재의 직관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Mobile에 이어 다가올 Agent에 의한 혁신을 논하기에 앞서 고객의 목소리보다 제품의 본질에 집중하는 제품 방법론을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2012년 서울대 인지과학연구소 소속의 이경민 교수 (1963~2022,서울대 의과대학 신경과)와 LG전자 생산기술원 옥형석 수석 (현 혜움 대표)가 주축이 된 연구팀은 이러한 기존의 인식에 의문을 가지고 표면적인 고객 목소리를 듣지 않고, 본질적인 접근을 시도하여 새로운 TV Concept을 제안하였다.
이 연구를 통하여 애플의 아이폰이 소수의 직관에 의한 결과물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에 의한 연역적이고 체계적인 방법론에 의한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또한 도출된 제품 개발 방법론을 Brain Tailored Design으로 정의하였다. 해당 방법론을 적용하여 미래의 스마트 TV의 모습을 프로토타이핑하였다. Brain Tailored Design은 인간의 근원적 욕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제품의 본질적인 가치에 기반하여 제품을 만들어 나가는 연역적 방법이다. Brain Tailored Design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제품의 가치들을 독립적으로 보지 않고, 순차적이고 연결된 관계로 본다.
제품의 가치들은 본질적 기능(Usefull)이 가장 먼저 정의가 되어야 하고, 이는 순차적으로 사용성(Usability), 감성(Emotion)순으로 이어지는 가치들을 순차적으로 규정지어준다. 해당 방법론을 Brain Friendly가 아닌 Brain Tailored라고 부르는 이유는 앞단계의 가치가 이어지는 제품의 가치를 재단(Tailored)해주기 때문이다.
아이폰의 사례로 생각해보자. 휴대폰의 본질은 무엇일까? 과거의 인류에게 휴대폰은 어떠한 형태로 존재했을까? 대다수는 휴대폰의 커뮤니케이션의 특성에 기인하여 서찰, 봉화, 전보등을 떠오르게 된다. 하지만 휴대폰의 본질은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아니다. 휴대폰은 원시시대의 돌도끼나 서부개척시대의 총처럼 생존과 직결된 강력한 도구로, 언제 어디서나 반드시 지니고 다녀야 하는 필수품이다. 이러한 Phone의 본질적 특성은 언제든지 이동하며 도구를 활용해야 했던 유목문화(Nomadic Culture)의 속성을 닮았다.
<Smart Device의 본질적 가치에 대한 비교>
휴대폰을 도구의 특성이 강한, 즉 반드시 지녀야 하는 핵심적인 도구로 생각한다면, 도구의 “Smart”는 어떠한 의미로 확장을 해야 할까? 휴대폰을 가장 핵심적인 도구로 생각한다면, 도구의 Smart란 다양한 도구를 통합하는 것으로 확장할 수 있다. 즉 스마트폰 의 Smart는 “다양한 도구를 담을 수 있는”으로 확장한 것이다.
본질적 가치가 결정되면 사용성, 감성으로 순차적으로 해당 가치를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정의되어야 한다. 다양한 도구들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여 쓰는 과정은 스마트폰이 앱을 사용하는 과정과 동일하다. 따라서 도구들의 모음에서 도구를 하나 집중하여 사용하고 닫는 형태는 다른 형태의 UX구조가 나올 수 없다. 반드시 2 Layer구조를 가져야 한다. 아이폰은 본질적 가치에 따라 휴대폰을 다양한 도구들의 모음에서 특정 도구를 열고 닫는 과정으로 UX를 설계하였고, 이 구조는 20년째 변하지 않고 있다.
<제품의 인지적 개념에 따른 UX의 설계>
감성적인 가치는 독립적일까? Home화면과 특정 App과의 화면 전환의 예를 살펴보자. 아이폰의 Home에서 앱을 선택하면 Zoom In/Out으로 화면이 전환된다. 이제는 모든 휴대폰이 이러한 방식으로 화면이 전환되지만 이러한 Zoom In/Out기반의 화면 전환방식은 애플이 최초로 적용한 방식이다. 애플이 나오기전 노키아, 삼성등의 모든 휴대폰에서는 버튼을 누를때 화면이 한꺼번에 나오는 ‘Abrupt’ 화면 전환방식을 사용하였다. 당시 많은 이들은 Zoom In/Out 방식이 개발 리소스를 많이 차지하고, 기존의 사용성 관점에서도 고객이 Task를 바로 수행하지 못하게 지연시키는 단점을 있다고 생각했다.
애플이 Home과 App간의 전환과정을 Zoom In/Out으로 설계한 것은 해당 과정을 도구모음에서 집중하여 하나의 도구를 선택하여 일을 하는 인지적 과정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시각자극의 입력에 따라서 해당 개념들의 관계를 규정짓는다. 아기가 엄마에 집중할때 다가오고, 재미없을때는 고개를 돌리는 것처럼 시각정보가 Zoom으로 입력되느냐 Sliding형태로 입력되느냐는 각 시각정보의 인지적 개념의 관계를 규정시켜 준다. 디자이너가 휴대폰의 Home에서 App을 누를때 사용할 수 있는 Transition의 형태는 오직 한가지, Zoom 방식 뿐이다. 왜내하면 각 개념들의 인지적 관계가 주의집중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제품의 본질적 가치는 사용성, 감성적인 영역까지 선택의 폭을 좁혀준다. 화면의 조그마한 움직임을 설계하기 위해서도 제품의 본질적 가치와 사용성의 구조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2. 특정 Seg.에 대한 통계적 접근이 아니라 인간, 특히 Brain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연역적 접근을 우선시한다.
TV와 휴대폰의 인지적 개념을 고려해보면 TV가 Low intensity multi-task를 다룬다면 휴대폰은 도구기반의 High intensity single-task를 다룬다. 휴대폰는 도구로서 Object와의 Interaction이 매우 중요하며 사용자의 Transient Activity에 대한 처리가 필요하다.
<Smart Device의 인지 개념에 대한 비교>
아래의 표는 애플의 화면 움직임을 초고속 카메라로 분석하여 Jerk(가속도의 미분량)를 분석한 그래프이다. 애플의 화면은 손을 떼는 순간 Jerk가 0으로 떨어짐을 알수 있다. 뇌의 기대에 부합하지 않는 움직임은 인지부하를 일으킨다. 가속도의 미분량 즉 Jerk가 영이란 의미는 힘이 가해지지 않는 상태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손을 떼는 순간은 가속도의 변화는 없어야 한다.
<좌. 안드로이드 휴대폰(2008년), 우. iPhone(2008년)>
그 당시 휴대폰 제조사들은 이러한 감성적인 특성의 중요성을 고려하지 못했다. 뒤늦게 이러한 특성의 중요성을 알고 H/W에 반영했을 때는 구글의 안드로이드 OS가 이러한 점을 반영할 수 없었다. 구글조차 PC의 OS처럼 Task들의 수행에 리소스를 효율적으로 활용되게 설계되었지, 화면의 움직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플은 도구의 인지개념을 먼저 고민하고, S/W, H/W, UX까지 이에 맞춰서 설계했다. 최초 출시된 iPhone은 멀티 태스킹을 지원하지 않았다. 대신 Transient Activity를 잘 처리하는데 리소스를 집중했다.
3.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 가치에 집중한다
해당 방법론은 제품의 본질적인 가치에 집중한다. 아마존의 창업자 베조스의 말처럼 10년뒤에 어떻게 변화할까가 아니라, 10년뒤에도 변하지 않는 가치에 집중한다.
과거의 예측으로는 PDA가 발전하여 현재의 스마트폰 같은 상품이 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PDA는 고성능 제품으로 전화기능을 넣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고 그런 상품도 매우 빠르게 등장했었다. 그런데 결과를 보면 놀랍게도 전화기가 컴퓨터를 집어삼킨 꼴이 되었다. 이를 전자상품을 팔던 가전기기 유통경로가 아닌 통신사와 연관된 통신기기 유통경로가 경쟁력이 높았다고 마케팅 관점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Brain Tailored Design에서는 제품이 어떤 제품을 중심으로 통합되느냐, 혹은 어떠한 제품들만 통합되고 제외되느냐를 예측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통합이 언제 일어날지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반드시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예측할 수는 있다. 자연의 법칙에 따른 변화의 순간을 정확히 예측 할 수는 없지만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을 추정할 수는 있다. 자연의 인위적인 법칙을 거스려려면 추가적인 힘이 드는 것처럼 제품의 통합도 순방향이 존재한다.
다양한 도구들 중에서 휴대폰을 중심으로 통합한 이유는 무엇일까? 휴대폰이 도구로서의 본질즉 지녀야 하는 특성이 가장 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휴대폰을 중심으로 열위한 Feature들이 합쳐지더라도 이는 충분히 경쟁이 가능하다. 매일 가지고 다니는 휴대폰의 카메라는 기능이 매우 열위하더라도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휴대폰의 카메라와 전문적 카메라의 경쟁은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휴대폰으로 합쳐지는 필연적인 과정을 거친다.
Mp3도 PDA도 이런 과정을 거쳐서 스마트폰에 통합되면서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갔다. 20년전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들고 다니는 소지품들은 모두 휴대폰으로 점차적으로 합쳐졌다. 혹시 주머니속에 아직도 휴대폰 외에 들고 다니는 무언가가 있다면 결국 휴대폰에 합쳐질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합쳐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블랙박스 같은 경우이다. 블랙박스는 도구형 서비스가 아닌 TV에 가까운 비서형 서비스이다. 내가 사용하는 도구가 아니라, 누가 비서처럼 자동차의 상태를 관리해서 보고해줘야 하는 서비스이다. Cowon의 Mp3, PMP(Portable Media Player)와 같은 기기들은 모두 휴대폰에 통합되면서 경쟁력을 잃어갔지만 Cowon은 블랙박스 시장에 새롭게 진입을 하여 추가적인 경쟁력을 확보하였다. 서비스도 생물처럼 본질적 가치에 따라 합쳐지기도 하고 절대로 합쳐지지 않기도 한다.